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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Issue

자본시장 IT, 맥락(脈絡) 있는 기술 혁신이 필요한 때

자본시장 IT, 맥락(脈絡) 있는 기술 혁신이 필요한 때

 

 

다른 어떤 금융업보다 대규모 정보기술IT 시스템에 기반을 둔 산업구조를 가진 자본시장. IT 혁신의 거센 바람 속에서 자본시장 IT 혁신은 아직 명확한 방향을 찾지 못한 분위기다. 현실 가능한 기술 혁신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글 김흥재 코스콤 기술연구소 선임연구원

 

1980년대 초 아버지를 따라 간 명동 증권사 지점 풍경은 일정한 시간마다 나오는 시세방송을 듣고 칠판에 색분필로 숫자를 써 내려가는 직원 누나와 종이에 가격을 적고 창구로 달려가 주문을 넣는 어른, 점심시간이면 모두 나가 칼국수를 먹고, 칠판 뒤 작은 사무실에서 몽당분필을 한 움큼 얻어 오는 여유가 있던 모습이었다.

 

앞으로 요구되는 기술 혁신의 방향

딱히 기술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던 자본시장이 지금은 100만 분의 1초 단위로 시장을 분석하고 주문을 내기 위해 컴퓨터 천재들을 동원해 알파고 못지않은 알고리즘 트레이딩 시스템을 개발하는 첨단 산업으로 변화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오른 <플래시 보이즈Flash Boys>(마이클 루이스 지음)는 이 같은 자본시장의 기술 경쟁을 잘 그리고 있다. 승자독식의 속도 경쟁이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직접 수익을 만들어주진 못했지만 경제 성장이 정체된 요즘 금융사들이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 무한의 속도 경쟁은 이제 일상처럼 돼 버렸고 또 다른 차원의 경쟁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성장이 멈춘 듯한 때 인류는 항상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혁신으로 새롭게 도약했다. 이자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낮은 금리, 노후 대책이라기엔 미흡한 국민연금, 월급 한 푼 안 쓰고 10년을 모아도 서울에 아파트 한 채 가지기 어려운 요즘이다. 여의도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재테크로 주식투자를 선뜻 주변에 권하는 경우가 드물고, 자신조차 망설이게 만드는 상황은 이 산업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방증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얼마 전 월급쟁이 친구들과 재테크에 대해 얘기하던 중 자신의 재무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예·적금, 대출, 보험, 증권, 카드, 연금 등을 일일이 챙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모든 것이 손안에서 해결되는 요즘 변변한 개인 재무관리 애플리케이션도 없다는 것 역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제법 돈을 모은 친구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어느 금융사에서 제공하는 재무 진단 앱에서 날 대책 없이 사는 사람으로 진단하더라.” 아마 해당 금융사의 보유 계좌만을 대상으로 진단했을 것이다. 다른 친구는 “주식에 좀 투자하려고 계좌를 개설하고 프로그램을 설치했더니 메뉴만 50~60개가 넘고, 대체 이 금융상품이 뭘 사고파는지 알 수가 없더라”며 “마치 중국어로 쓰인 딤섬 주문표를 보는 것 같더라”고 푸념했다. 이는 딤섬 종류는 많은데 속을 무엇으로 채웠는지 모르고 주문해야 하는 상황, 옆 테이블의 것이 맛있어 보여 같은 것을 골랐는데 맛이 형편없는 경우도 많다는 비유일 것이다. 친구들이 건네는 말에 할 말이 없었지만 동시에 자본시장의 기술 혁신 방향이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게 해주었다.

과거 수년은 내부 시스템의 경쟁이었고, 향후 수년은 고객 접점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경쟁이 이어질 것이다. 지금보다 더 친절하고 섬세한 로보어드바이저RA, 독립투자자문업자IFA, 온라인투자자문 및 증권사 중립적 트레이딩 서비스 등 투자자 채널이 다양해짐에 따라 오픈 APIOpen Application Program Interface 등을 활용한 채널 시스템 개방도가 기술력과 신규 투자자 흡수력의 척도가 될 것이다.

 

     

 

현실적인 기술 혁신 프로세스

기술 혁신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당장 금융투자사에 필요한 기술만 봐도 클라우드 컴퓨팅, 바이오 인증, 블록체인, 오픈뱅킹, 머신러닝 등 적지 않은 인력이 최소 수개월은 연구해야 실체를 파악하고 뭔가 흉내 낼 정도로 만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국내 금융사 IT 조직은 기술 개발에 매진하는 것은 고사하고, 시스템 유지보수와 같은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차다. 글로벌 금융사의 IT 인력만 보통 회사당 1만 명에 이른다. 종종 고작 4~5명이 세상을 바꾸는 서비스를 내놓기도 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반문할 수 있다.

성공한 핀테크 스타트업 통계를 보니 30대 말~40대의 금융사 출신 최고경영자CEO 비율이 높다고 한다. 그들은 기존 금융 서비스의 빈틈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혁신의 마중물로 삼을 수 있었다.

사례로 든 친구들이 대표성을 갖지는 않지만 그런 푸념을 섬세함으로 해결해주는 비즈니스가 핀테크다. 난해한 금융상품 구조, 번거로운 이용 절차, 경쟁에 비해 차별화되지 않는 서비스 등 점으로 존재하는 많은 빈틈을 선으로 이어 맥락으로 만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혁신적이나 값싼 기술을 찾아 배치한다. 머신러닝이 유행하니 ‘우리도 일단 어디든 찾아 적용하자’와 고객들이 어떤 금융상품을 살지 고민하니 이를 위해 머신러닝을 택하자는 두 방식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정된 자원으로 목적 없이 시작된 기술 혁신은 더 좋은 기회와 시간을 잃을 수 있다. 목표가 분명치 않으니 시작도 어렵고, 시작해도 잦은 외압에 시달리게 된다.

글로벌 금융사 규모에 비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스타트업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스타트업처럼 금융사마다의 독특한 색과 스토리를 만들고 호흡이 긴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 2~3년 후에 일반화가 예상된 첨단 기술을 혁신의 도구로 정한다고 장기 플랜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장편영화의 결말은 누구나 감동 있게 그릴 수 있다. 결말을 보기까지 이어지는 중간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따라서 현실적인 기술혁신의 첫걸음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부터 저 끝의 고객까지 이어지는 선을 만들고, 그 선에 어떤 문제와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찾아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들을 결합, 응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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