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출 수 없는 산업 개혁 금융기관이 선도해야 한다
해운업, 조선업의 부실 속에서 다른 산업의 위기감도 피어나고 있다. 금융사들이 이 위기 극복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해운업과 조선업의 위기를 통해 바라본 우리나라 금융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글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사진 한국경제DB
과학자들이 재료를 절반만 쓰고도 종전과 동일한 약효를 내는 항암제를 개발했다면, 환자들은 저렴하게 그 약을 구매할 수 있어 절약한 돈으로 다른 가치 있는 일에 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 재료가 지천으로 풍부한 섬을 발견해 그 재료로 항암제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환자들에게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항암제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재료를 섬에서와는 달리 더 가치 있는 항암제 재료로 전환시켰다. 이에 대한 상이 이윤이다. 그런 가치 있는 용도 전환의 가능성을 남보다 빨리 발견해 실천하는 게 바로 기업가정신이다.
이와는 반대로 비싸게 사 와서 이보다 싸게 판다는 것은 사람들이 기꺼이 더 많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특정한 자원을 그런 지불 의사가 없는 용도로 전환시켰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한 벌이 손실이다. 이런 손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그 사람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그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서 사업을 했다면, 그의 실패는 자신뿐만 아니라 채권자들인 금융기관 이용자들에게도 심대한 피해를 준 셈이다.
과거 번성했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2가지를 ‘페카토 모르탈레
(용서받지 못할 죄)’로 취급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는 공직자가 국가의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고, 흥미롭게도 다른 하나는 기업가들이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부러 손실을 보려는 기업가는 없겠지만, 손실 발생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포함한 희소한 자원을 과거의 용도에 비해 가치가 더욱 낮게 쓰이도록 만들었다는 뜻이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이윤 추구를 탐욕이라고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손실 발생을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했다.
2016년 대한민국의 페카토 모르탈레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회사가 이윤을 내면 법인세 등으로 가져가려는 유혹을 자제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회사가 커다란 손실을 내어 부도 직전이라면 이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추가 대출을 해주면 안 될 것이다. 높은 법인세나 부도 직전 기업에 대한 지원이 실행될수록, 자원을 더 가치 있는 용도로 전환하려는 기업가정신이 훼손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조선업의 위기는 한마디로 정상적인 금융시장이라면 있을 수 없는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런 금융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아무리 국민의 세금을 부실한 은행에 집어넣더라도 ‘도덕적 해이’의 습관만 더 키울 뿐 우리 경제의 회생 희망은 멀어질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2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 현상에 대한 잘못된 정책적 대응이고, 다른 하나는 경기 침체 속에서 구조조정을 계속 미루어 부실을 키우게 한 금융기관의 소유지배구조다.
첫째 원인은 우리만의 특유한 문제라고 보기 어렵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세계 각국 정부들은 대개 적자재정정책과 통화팽창정책, 심지어 양적완화정책을 줄곧 전개해 왔다. 그렇지만 미국만이 셰일가스 등장으로 침체에서 벗어나고 금리를 정상화시키는 시기를 엿보고 있을 뿐 유럽, 일본, 중국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아직 장기적 경기 침체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거시 교과서의 케인지언Keynesian 경기부양정책이 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정책적 대응을 위해서는 금융과 실물과의 관계, 케인지언 거시정책의 한계, 이자율 조작의 문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문제, 은행제도의 문제 등에 대한 깊고도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 문제가 아직 학술적으로나 정책적 차원에서 제대로 정리가 됐다고 볼 수 없고, 이에 따라 각국 정부의 대응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라고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둘째 원인인 소유지배구조 문제는 상당 부분 우리 특유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은행은 금융기관으로 불렸다. 수익을 추구한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금융회사라는 말이 쓰이기도 했지만 다시 금융기관이란 말이 통용되고 있다. 아마도 은행들이 실질적으로 공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2004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최근 또다시 한국은행의 KDB산업은행 발행채권 인수, 한국은행의 IBK기업은행에 대한 출자 등 정부는 부실채권을 쌓은 국책은행들을 구제하기 위한 구제금융을 기업구조조정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실 금융 산업이 이윤을 낼 전망이 좋은 곳을 선별해 대출을 하고 사후적으로 잘못된 대출임이 드러나면 손실을 최소화하는 금융 중개 기능을 잘 수행한다면, 그 자체로 성장 산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성장 산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까닭을 추적해 가면 국책은행뿐 아니라 모든 은행이 실질적으로 공기업이 됐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사실상 은행의 주인은 정부라고 할 수 있으며 민간은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조선업·해운업의 위기와 함께 금융기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다.
금융기관의 원활한 역할 수행 필요
우리나라는 무역 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이지만 은행의 총자산이익률ROA이 인도네시아(2.75%), 말레이시아(1.70%)보다 낮은 0.38%에 불과하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 경쟁력 조사에서 금융시장 성숙도는 80위, 금융 건전성은 122위를 차지해 동남아 국가에도 경쟁력이 뒤지고 있다.
재벌의 사금고화 방지를 위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공공선택론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재벌의 사금고화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동일인 여신비율을 크게 낮추어서 편중 대출에 따른 위험을 낮추고 금융기관에 책임경영주체, 즉 주인이 등장하도록 소유지분에 대한 규제들을 대폭 완화할 필요가 있다. 그런 주인이 등장하고 각 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충실히 다한다면 ‘페카토 모르탈레’를 쉽게 용서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성장성 있는 기업들에 필요한 자금이 공급됨으로써 부실대출의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성장 잠재력이 높은 산업이 힘을 얻고 이들에게서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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